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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작가의 ‘아이 시점 카메라’가 형성하는 현실 공감 구조

blog0510-1 2025. 4. 21. 11:20

김영진 작가의 '아이 시점 카메라'가 형성하는 현실 공감 구조

세상은 아이의 키만큼 낮다 – 김영진 작가의 세계

김영진 작가는 어린이 그림책에서 흔치 않게 현실 그 자체를 유쾌하게, 그러나 사실적으로 조명하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 《지하철을 타고서》, 《우리 아빠는 택배맨》, 《편식쟁이 딱지》, 《일기 써라!》 등은 모두 현대 한국 사회의 한 장면을 아이의 시선으로 포착해 낸 작품이다. 그는 상상이나 판타지보다 지금, 여기의 일상을 그리되,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중심으로 세상을 구성한다. 김영진 작가가 그리는 아이는 늘 낯설고 버거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만, 결코 주저앉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현실과 부딪히고, 해석하고, 때로는 웃어넘긴다. 그런 점에서 김영진의 작품은 단순한 어린이 서사를 넘어, 아동기 정체성과 감정, 사회성과 공감 능력 형성에 중요한 통로가 된다. 그가 포착하는 일상의 감정은 작지만 강하고, 익숙하지만 새롭다. 김영진 작가는 이야기꾼이자 관찰자이며, 아이의 내면을 시선으로 말하는 시각적 스토리텔러다.

관찰과 공감으로 완성된 시점 연출의 장인

김영진 작가의 그림책이 특별한 이유는 이야기보다 먼저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아이의 시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단순히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의미가 아니다. 카메라의 앵글처럼 모든 장면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어른은 크게 보이고, 사물은 가까이에서 확대되며, 장면의 포커스는 아이가 주목하는 부분에 맞춰져 있다. 예컨대 《지하철을 타고서》에서는 아이가 보는 어른의 다리와 가방, 사람들의 표정이 전부다. 그 시야를 통해 독자 또한 그 아이의 불안과 궁금증, 그리고 적응의 감정을 그대로 체험한다. 김영진은 이런 시점을 통해 아이의 세계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 속에 들어가 함께 ‘살아보게’ 만든다. 이러한 관찰 중심의 구성 방식은 단순한 그림책 감상이 아니라, 감정의 동행이 되며 독자와 주인공 사이에 높은 몰입도와 감정의 동조 현상을 만들어낸다.

현실의 리얼리즘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진정성

김영진 작가는 결코 이상화된 세계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빠는 바쁘고, 엄마는 잔소리하며, 친구와는 싸우기도 하고, 급식은 맛이 없고, 일기 쓰기는 귀찮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그림책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성은 결코 무겁지 않다. 오히려 담담한 유머와 세밀한 디테일을 통해, 독자가 ‘그래, 우리 집도 저래’ 하고 웃을 수 있게 만든다. 《우리 아빠는 택배맨》에서는 택배 일을 하는 아빠의 고단한 하루가 그려지지만, 아이의 시선에서는 아빠는 여전히 ‘자랑스럽고 멋진 존재’로 그려진다. 이처럼 김영진의 작품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되, 그것을 아이의 감정과 연결해 긍정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감정의 리얼리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아이 시점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공감의 구조

김영진 작가의 시선 연출은 단순한 관찰의 효과를 넘어서 강력한 공감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독자는 아이의 시야로 상황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가 느끼는 감정에 동화된다. 예를 들어 《일기 써라!》에서는 어른의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얼마나 크게, 때로는 왜곡되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스토리 외적으로도 ‘내가 아이였을 때’를 떠올리게 되고, 부모 독자라면 ‘지금 내 아이는 어떤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까’를 되짚게 된다. 이러한 구성은 세대 간 감정의 간극을 줄이고, 감정적 통로를 형성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김영진의 시점은 단지 감상의 수단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감의 매개체로 기능하며, 그림책의 사회적 가치를 확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아이의 감정과 언어, 몸짓을 시각적으로 번역하다

김영진 작가는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를 통해 아이의 감정을 번역하는 데 능하다. 그의 그림은 말보다 먼저 감정을 전달하고, 자잘한 동작 하나에도 의미를 담는다. 아이가 뒤를 돌아보는 장면, 어른을 올려다보는 눈,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다가가는 손짓 등은 복잡한 설명 없이도 상황의 정서적 맥락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유아가 직접 문장을 해독하지 않더라도 그림만으로 감정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시각적 언어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또한 장면의 연출은 마치 영화의 컷처럼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무리가 없다. 김영진 작가의 이 같은 섬세한 시각 연출은 아이 독자에게는 감정 훈련의 장이 되고, 어른 독자에게는 잊고 있던 감정의 복원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그 감정을 함께 ‘살아내도록’ 만드는 작가다.

결론 –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그림책

김영진 작가의 그림책은 어쩌면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세상은 정말 아이에게 어떤 모습일까?" 그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점을 낮추고, 장면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감정을 충실하게 담아낸다. 이 ‘아이 시점 카메라’는 단순한 시각적 기법을 넘어서, 아이의 존재와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이자 철학이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아이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아이였던 시절의 자신도 더 깊이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김영진의 그림책은 웃음이 많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익숙하지만 오래 기억된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이의 눈으로 다시 보고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의 시점은 결국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필요한 시선이며, 공감과 존중의 언어로 구성된 가장 조용한 사회적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