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

숀 탠의 그림책으로 바라본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조명

blog0510-1 2025. 4. 18. 13:05

낯선 세계에 다리를 놓는 사람, 숀 탠 – 상실과 이방성을 그리는 상상의 사회학자

숀 탠은 호주 퍼스 출신의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현대 그림책이 다룰 수 있는 주제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킨 인물이다. 그는 《도착(The Arrival)》, 《빨간 나무(The Red Tree)》, 《잃어버린 것들(The Lost Thing)》 등에서 어린이 문학의 언어로는 좀처럼 다루기 어려운 이방성, 상실감, 사회적 주변인을 끈질기게 조명해 왔다. 특히 텍스트 없는 그래픽 노블 형식의 《도착》은, 말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의 심리적 여정을 정교한 시각 언어로 풀어내며 전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언어는 사라졌지만, 감정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부유한다.

그의 작업은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해체한다. 탠은 픽션과 논픽션, 어린이와 성인, 판타지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내면의 어두운 감정과 사회적 질문을 담아낸다. 세밀화와 콜라주, 연필 스케치, 사진적 질감이 공존하는 그의 시각 언어는 불안정하면서도 아름다우며, 독자에게 끝없는 해석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의 책 속 인물들은 종종 말이 없고, 낯설고, 작고,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 존재들은 점점 독자 안에서 '나 자신'으로 환원된다.

숀 탠의 그림책은 어린이 독자에게는 감정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통로이며, 성인에게는 미처 언어로 포착하지 못했던 감정을 회복하는 매개체다. 그는 말없이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며, 우리가 ‘다름’을 이해하고 ‘혼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숀 탠은 환상과 리얼리즘의 경계에서 이민자, 외톨이, 경계인의 마음을 붙잡아 그들을 위한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이야기 지도 제작자다. 그의 작업은 상상력에 대한 믿음이자, 인간성에 대한 사려 깊은 탐구이다.

" 공존과 상호 이해를 위한 시각적 은유" 

말 없는 서사로 그리는 '도착'의 감정

호주 출신의 작가 숀 탠(Shaun Tan)은 *도착(The Arrival)*이라는 무언(無言) 그래픽 노블을 통해 언어 없이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작품은 전쟁과 억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향한 한 가장의 여정을 그리며, 문화적·정체성적 전환의 복잡한 감정을 시각적으로 정교하게 묘사한다.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낯선 도시의 기호, 생물, 음식 등은 독자에게도 이질적이다. 이러한 묘사는 이민자가 새로운 사회에 도착했을 때 경험하는 생소함과 단절감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타인의 현실을 상상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길러준다.

 

숀 탠의 그림책으로 바라본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조명

이민자의 시선으로 본 '낯섦'과 '포용'의 가능성

숀 탠은 이민자의 시선을 외부인의 고통이나 피해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는 독립적이고 존엄한 개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선택하고 구축해 가는 긍정적 주체성을 강조한다. 낯선 공간에서 등장인물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공감과 연대를 형성한다. 이는 단일문화적 시각을 넘어, 다문화 사회의 협력과 공존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특히 미국처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있어, 이러한 메시지는 사회적 통합의 정서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림책으로 구현되는 '문화적 중립성'과 교육적 가치

도착은 실제 언어가 배제된 상태에서 이미지로만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특정 문화나 언어에 속하지 않는 문화적 중립성을 띠고 있다. 이는 교육 현장에서 이민자 아동이나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조율하고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로 기능할 수 있다. 더불어 원문에 의존하지 않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구조는 아동의 표현력, 상상력, 그리고 내면의 감정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유리하다. 이런 방식은 현대 유아 및 초등 교육의 개별화 학습 및 감성 교육 트렌드와도 부합한다.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존재한다는 시선

숀 탠의 세계관은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맥락과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이민자의 삶은 어느 한 문화를 잃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더해가는 과정이며, 이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성장의 여정이다. 작가는 이러한 관점을 비판보다는 이해와 탐색, 그리고 존중의 시선으로 담아내며, 독자로 하여금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의 복합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는 문화적 갈등보다 문화 간 소통의 가능성을 중심에 둔 따뜻한 메시지다.

이민자 담론을 넘어선 '인간성'의 이야기

도착은 결국 이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을 위해 새로운 삶에 뛰어드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인간 보편의 용기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숀 탠은 특정 국가의 정책이나 정치적 논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 시각 예술이라는 보편 언어로 독자와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림책이 거울이 될 때 – 정체성 교육의 첫걸음은 그림책에서 시작된다

그림책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어린이가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거울이 된다. 정체성 교육은 한 개인이 자신을 타인과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의 특성과 소속감을 긍정하는 과정이다. 이 중요한 성장의 과정은 문장과 그림이 함께 호흡하는 그림책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아이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을 따라가며, 직접 경험하지 못한 감정과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점차적으로 '나'라는 존재의 감정, 생각, 행동을 인식하게 된다. 그림책은 아이가 가장 안전하게 자신을 발견하고 시험해 볼 수 있는 심리적 놀이터다.

특히 다양한 가족 구성, 피부색, 언어, 문화, 성별, 능력 차이를 그리는 그림책은 정체성 교육의 핵심 도구다. 예를 들어, 몸이 다르거나 다른 나라에서 온 등장인물, 혹은 말이 서툰 주인공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이야기는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너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것은 단순한 공감 훈련을 넘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존재의 승인 경험으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을 한결 깊이 받아들이고, 타인의 다름을 배척하지 않는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정체성 형성에 있어 중요한 감정의 언어도 그림책이 길잡이가 된다. 감정을 명명하고, 감정의 원인을 파악하며, 감정이 흐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자기 이해의 출발이다. 《기분을 말해봐》처럼 감정을 시각화한 그림책은 아이들이 '감정과 나'를 분리해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는 충동적 행동을 줄이고, 자존감을 지켜주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정체성은 단단한 자존감을 기초로 자란다. 그림책은 감정을 훈련하고 정리해주는 일상 속의 감정 상담실인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책은 아이에게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곧 ‘자기 서사’를 구성하는 능력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이고, 왜 이런 선택을 했으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뼈대다. 그림책을 통해 아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인생을 서사화하는 경험을 쌓는다. 이 작은 이야기는 훗날 아이가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조직하고,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나침반을 갖게 해 준다. 그림책은 결국,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존재다.

그림책을 통한 정체성 교육은 어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가 자라며 반복해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과정이며, 사회와 연결되는 연습이다. 그 거울이 맑고 풍부하게 반사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좋은 그림책이다. 우리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에게 단지 ‘이야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할 권리와 방법을 건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