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

앤서니 브라운이 자주 쓰는 상징물의 의미 분석

blog0510-1 2025. 4. 17. 09:00

앤서니 브라운 – 침묵하는 마음을 그려내는 환상의 거울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은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빌려 아이의 내면, 가족의 균열, 사회의 구조를 조용히 고발하고 위로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동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상징과 시선, 결핍의 언어가 숨겨져 있다. 그는 인형보다 감정을 먼저 그리고, 모험보다 고요한 관찰을 택한다. 브라운의 세계는 유년기의 눈에 비친 '이상하게 낯선 현실'을 닮았다.

대표작 《고릴라》에서 아이는 아버지의 부재를 환상 속 고릴라에게서 찾는다. 하지만 그 고릴라는 단지 보호자이기보다는, 아이 스스로가 만들어낸 관계의 대체물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고릴라’라는 반복되는 이미지로 인간 내면의 고독과 사랑의 갈망을 끊임없이 변주해 왔다. 《내가 아빠였을 때》에서는 아빠의 이미지를 과장된 환상과 유머로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유년기의 이상화된 기대감과 현실의 간극을 슬쩍 드러낸다.

그의 그림은 마치 꿈의 편린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 든다. 일상적인 배경 속에 기이하게 배치된 사물, 실제보다 과장된 신체, 고전 회화를 패러디한 장면들은 독자로 하여금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생각’을 먼저 멈추게 한다. 그것은 단지 놀라움 때문이 아니라, 작품 속 인물이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말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유아를 위한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침묵과 여백,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는 아이에게 감정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대신 ‘느껴보라’고 속삭인다. 그의 작품은 설명보다 느림, 교훈보다 공감, 결말보다 여운에 가깝다. 이는 그림책이 교재가 아닌, 하나의 감정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돼지책》에서 엄마는 가족의 무관심에 지쳐 집을 떠난다. 이 이야기는 가부장제, 가족 내 역할 고정, 여성의 탈출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단 한 줄의 비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떠난 집이 왜 그렇게 낯설고 조용한지를 통해 독자는 알게 된다.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한 권의 그림책을 ‘해석하는 경험’이자,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감정의 미로를 거니는 일이다.

거울과 유리창 – 자아와 현실의 경계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의 그림책에서 ‘거울’과 ‘유리창’은 자주 등장하는 상징물이다. 이들은 현실과 내면세계, 또는 외부 세계와 주체 사이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작품인 『동물원』에서는 창 너머의 동물과 창 밖의 가족이 서로를 바라보며 감정적으로 교차한다. 『돼지책』에서도 엄마가 사라진 집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과 창문은 현실 도피와 외면의 상징이 된다. 거울은 특히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서는 거울 속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그려져 아이의 심리를 나타낸다. 이는 브라운이 자아 정체성의 형성과 불안, 혼란을 표현하기 위해 시각적 상징을 사용하는 탁월한 방식이다. 그의 그림에서 거울은 단순히 물리적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내면의 창이며, 유리창은 사회와 자신을 구분 짓는 얇지만 견고한 벽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징은 독자로 하여금 그림책 속 아이의 내면세계를 공감하고 이해하도록 돕는다.

고릴라와 동물들 – 감정의 대변자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속 동물들은 단순한 배경이나 재미를 위한 존재가 아니다. 특히 ‘고릴라’는 작가의 상징적 자아를 투영한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고릴라』에서 주인공 소녀는 현실의 외로움과 결핍을 고릴라를 통해 치유받는다. 고릴라는 처음엔 위협적인 존재로 그려지지만 곧 소녀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다정한 동반자가 된다. 이는 ‘강한 외형 속에 숨겨진 부드러운 감정’을 대변하는 상징이다. 또한 고릴라는 브라운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자아로, 그의 어린 시절 상처와 외로움을 감정적으로 해소하는 매개체로 해석된다.

다른 동물들 또한 감정과 성격의 은유로 자주 사용된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에서는 아빠가 점점 커다란 동물로 묘사되며 아이의 눈에 비친 이상화된 보호자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그림자 숲』에서는 사자의 위엄, 나비의 자유로움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해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 호기심, 희망을 표현한다. 브라운에게 있어 동물은 ‘감정의 대변자’이며, 이를 통해 독자는 언어 너머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앤서니 브라운이 자주 쓰는 상징물의 의미 분석

문과 계단 – 선택과 성장의 여정

브라운은 ‘문’과 ‘계단’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물의 심리적, 정서적 성장을 시각화한다. 문은 새로운 세계로의 입구이자 선택의 순간을 의미하며, 계단은 그 여정을 거쳐 나아가는 성숙의 과정을 나타낸다. 『그림자 숲』에서는 아이가 문을 통해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고, 낯선 세계를 탐색하며 성장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문은 단지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다.

계단은 수직적으로 상승하거나 하강하며 심리 상태를 상징한다. 『터널』에서 두 남매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은 형제 관계의 회복과 자기 발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 『꿈꾸는 윌리』에서도 주인공 윌리가 계단을 오르며 무력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여정을 겪는다. 이렇듯 브라운은 물리적 구조물을 통해 독자가 인물의 감정과 성장 과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한다. ‘문’은 용기 있는 선택의 상징이며, ‘계단’은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깊이를 표현한다.

정장, 모자, 소파 – 일상 속 위선과 억압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정장 차림의 남성, 무표정한 얼굴, 소파에 앉은 가족 등은 사회적 위선과 가정 내 억압 구조를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돼지책』에서 아빠는 항상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데, 이는 권위적 가부장 이미지를 상징하며 가족 내에서 실제로는 무력하고 무관심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의상은 역할에 갇힌 인간상을 상징하며, 외형은 단정하지만 내면은 비어 있거나 무감각한 상태를 나타낸다.

모자 역시 억눌린 자아의 은유로 자주 활용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나 『꿈꾸는 윌리』에서 주인공들이 쓰는 모자는 자기 자신을 숨기거나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쓰는 ‘가면’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시각적 장치는 독자로 하여금 일상의 사물 속에서 심리적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도록 만든다. 소파는 특히 가족 관계의 정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브라운의 작품에서 가족들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지만, 서로를 보지 않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절된 소통, 표면적인 일상, 숨겨진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브라운은 억압된 감정과 위선 된 관계를 깊이 있게 해석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