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

한국 그림책에서만 나타나는 가족 서사의 특징

blog0510-1 2025. 4. 20. 08:22

일본 · 중국과 비교한 한국 그림책의 정서 구조

한국, 일본,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이지만, 그림책에서 나타나는 가족 서사의 정서와 구조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일본 그림책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독립성과 내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죽음과 자아정체성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통해 독립된 존재로서의 ‘나’를 조명합니다. 가족이 등장하더라도 배경적 요소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중국 그림책은 전통적 권위, 효(孝)의 가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부모나 조부모의 지시에 따라야 하며, 가족은 위계질서와 윤리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이에 비해 한국 그림책의 가족 서사는 정서적 밀착이 깊고, 서로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특징을 지닙니다. 특히 할머니, 엄마, 누나와 같은 여성 가족 구성원과 아이 사이의 정서적 교류가 중심 테마로 자주 등장합니다. 이처럼 그림책 속 가족 서사는 단순히 가족의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회의 문화적 가치와 이상적 인간관계를 담아내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한국 그림책에서만 나타나는 가족 서사의 특징

가족의 정서적 밀착과 ‘엄마’의 상징성: 돌봄과 헌신 중심으로서의 어머니

한국 그림책에서 어머니는 단순한 보호자가 아닌, 정서적 세계의 중심이자 삶의 전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어린이 독자가 어머니의 존재를 통해 불안, 외로움, 분리불안을 해소하는 구조가 자주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백희나의 《이상한 엄마》는 엄마가 부재한 상황에서 아이가 겪는 심리적 공백을 판타지를 통해 위로받는 과정을 그리며, 엄마의 존재가 단순한 생활 도우미가 아닌 심리적 안정의 원천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엄마 까투리》에서는 어미 새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희생적 사랑을 통해 무조건적 사랑의 상징으로서 엄마가 재현됩니다. 이 같은 서사는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가 갖는 문화적 상징성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유교적 전통 속 ‘효’의 개념도 어머니와의 정서적 유대 속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됩니다. 돌봄의 주체로서 엄마는 한국 그림책의 핵심 인물이며, 이는 다른 문화권과 차별화된 중요한 특징입니다.

세대 간 관계와 ‘할머니’ 캐릭터의 서사 확장: 기억과 감성, 전통을 잇는 이야기의 연결자

한국 그림책에서는 특히 할머니 캐릭터가 주도적인 인물로 자주 등장합니다. 단순한 노인이나 주변 인물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잇고 정서를 지켜주는 정서적 핵심축으로 기능합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에서는 손자와 단둘이 시골에서 지내는 여름을 통해 아이가 느끼는 소외감과 상실감,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따뜻하게 담아냅니다. 이때 할머니는 단지 ‘보호자’가 아니라 아이의 세계에 깊이 관여하는 감정의 동반자입니다. 또한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와 같은 재해석된 전래동화에서도 할머니는 강하고 지혜로운 존재로 그려지며, 단순히 나약하거나 보호받아야 할 노인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가족 구성원으로 재탄생합니다. 이러한 가족 서사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노인의 위치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세대 간 단절이 아닌 정서적 계승과 연대를 중심으로 한 서사는, 다른 나라의 그림책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고유의 감성적 특성입니다.

형제자매 간 서사: 갈등보다 공존 중심의 관계, 한국적 공동체 가치의 어린이판 구현

한국 그림책에서 형제자매 간 관계는 단순한 갈등 구조를 넘어서 협력, 배려, 공존의 가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메리》와 같은 작품에서는 동생을 돌보는 누나의 입장을 통해 책임감과 관계 유지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조명하며, 동시에 형제간의 감정적 회복을 유도합니다. 이는 단지 육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상호의존적 문화 코드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이야기의 주된 포인트가 아니라, 관계를 회복해 가는 과정이 핵심이 되는 점은 한국 그림책의 중요한 정서적 구조입니다. 이는 경쟁보다 조화를 중시하는 교육적 배경과도 연결되며, 아이들에게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길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부재하는 아버지와 대체적 관계망의 서사 구조

한국 그림책에서는 종종 아버지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거나 부재하는 구조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완전히 비워져 있지 않고, 이웃, 형제, 조부모, 심지어 동물이나 상상의 친구가 그 빈자리를 채우며 아이의 세계를 지탱합니다. 이는 현실 속 맞벌이 부부, 이혼 가정, 조손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의 반영일 뿐 아니라, 감정적 보완자에 대한 한국적 시선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수박 수영장》에서는 특별히 부모가 등장하지 않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관계를 만들어가며 자기 안의 감정과 욕망을 탐색합니다. 이는 가족의 결핍을 사회적 관계망으로 메우는 구조로 볼 수 있으며, ‘가족’의 의미가 혈연을 넘어 확장될 수 있음을 제시합니다. 그림책 속 대체 관계망은 가족의 전통적 틀에 갇히지 않고, 아이에게 필요한 감정적 자원을 어떻게든 확보하려는 유연한 한국적 현실 대응 방식을 보여줍니다.

결론: 정서 중심의 한국 가족 서사가 주는 문화적 가치

한국 그림책의 가족 서사는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변화를 그대로 담아내며, 정서 중심의 관계 서사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일본이나 중국 그림책에서는 개인주의적 성장 서사 또는 위계적 윤리 구조가 중심이라면, 한국 그림책은 언제나 감정의 흐름, 관계의 회복, 돌봄과 유대가 중심이 됩니다. 이는 단지 이야기의 구조나 인물 배치의 차이가 아니라, 한국인이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아이에게 바라는 이상적 사회성의 투영입니다.

이러한 서사는 단지 아이에게 가족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관계 안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돕습니다. 또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가족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한 깊은 고민을 유도합니다. 한국 그림책은 바로 이런 정서적 서사를 통해,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묻고 다시 쓰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