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

백유연 그림책에 흐르는 ‘자연의 위로’ – 감정을 보듬는 식물적 상상력

blog0510-1 2025. 4. 22. 22:42

감각과 감정을 엮는 이야기꾼, 백유연 작가의 세계

백유연 작가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섬세한 자연의 언어로 풀어내는 그림책 작가다. 그녀의 대표작인 《목련만두》, 《풀잎국수》, 《귤의 맛》 등은 음식, 계절, 식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가족과 기억, 상실과 위로 같은 깊은 주제를 다룬다. 특히 《목련만두》에서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의 작별을 만두를 빚는 행위로 연결하며, 감정을 손끝으로 빚어내는 장면이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애도와 회복, 나눔과 그리움이 겹겹이 쌓여 있다. 백유연은 자연과 음식이 지닌 감각적 언어를 통해 어린이의 감정에 접근하고,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 결과 그녀의 작품은 정서적 위안뿐 아니라, 감정 교육의 매개로서도 큰 가치를 지닌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백유연이 말보다 더 정직한 ‘자연’과 ‘손의 감각’을 통해 서사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언어 이전의 감각과 기억을 중심으로 아이와 독자가 조용히 교감하게 만드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한국 그림책 작가 중에서도 보기 드문 접근이다.

음식과 자연의 상징이 감정을 감싸는 방식 – 《목련만두》의 세계

《목련만두》는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이 그림책은 주인공 아이가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기억하며 목련꽃잎을 따서 만두를 빚는 과정을 통해, 상실과 애도의 감정을 천천히 안아가는 이야기다. 만두라는 음식은 여기서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추억의 형태’이며, 목련은 그 감정을 감싸는 자연의 포옹이다. 백유연은 아이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만두를 빚는 손길, 목련잎의 부드러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을 통해 감정이 서서히 드러나도록 한다. 이러한 감각 중심의 서사는 독자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특히 어린이에게 상실이라는 경험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다. 그러나 백유연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자연을 관찰하는 시선 속에서 그 감정을 천천히 풀어준다. 그림 속에 흐르는 부드러운 색감과 여백, 손끝의 온기를 담은 장면들은 그 자체로 아이에게 위로가 된다. 《목련만두》는 이러한 ‘자연과 음식의 상징’이 어떻게 아이의 내면을 어루만지고, 감정의 언어로 바뀌어 나오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유연 그림책에 흐르는 ‘자연의 위로’ – 감정을 보듬는 식물적 상상력

 

《풀잎국수》와 식물적 상상력 – 관계의 온도를 그리다

《풀잎국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적 거리, 그리고 그 거리의 회복을 ‘풀잎’과 ‘국수’라는 식물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책에서 아이는 풀잎을 따 모아 국수를 만들어 먹으며 친구와의 관계를 되돌아본다. 여기서 식물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연결의 매개’로 등장한다. 백유연은 아이가 스스로 풀잎을 고르고, 국수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감정의 복잡함을 천천히 다루도록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자연의 리듬에 따라 흘러간다는 점이다. 아이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있고, 다시 그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은 강요되지 않고, 풀잎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스스로 흘러간다. 이는 아이에게 ‘감정도 자연처럼 변화하는 것’이라는 은유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억지로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백유연의 접근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치유적이다. 《풀잎국수》는 단순히 자연을 배경으로 삼는 그림책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가 감정을 풀어가는 주체로 기능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이는 그림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식물적 상상력의 구현이며, 아동문학에서 감정 교육을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연의 위로가 전하는 감정 교육의 새 모델

백유연 그림책의 가장 큰 강점은 감정을 말로 가르치지 않고, 자연의 흐름과 행위를 통해 조용히 전달한다는 점이다. 감정 교육이라는 개념은 종종 교훈적이고 인위적인 방식으로 아이에게 전달되곤 하지만, 그녀의 그림책은 아이의 감정을 억지로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 공간, 행위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만두를 빚는 손의 움직임, 풀잎을 따는 행위, 음식을 나누는 시간은 모두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안전하게 느끼고 돌아볼 수 있는 감각적 언어다. 백유연의 그림책은 이러한 감각의 언어로 아이의 내면을 서서히 열어주며, 감정을 억압하거나 통제하기보다 자연스럽게 흐르게 만든다. 이는 현대 그림책에서 점점 더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는 '비언어적 정서 교육'과도 일치한다. 백유연의 서사는 명확한 교훈이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그 여백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조용히 마주하고 수용할 수 있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은 그림책의 기능을 확장시키며, 어린이 정서 발달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체 교육 모델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기억과 감정의 풍경을 새롭게 그리는 작가

백유연 작가는 단순히 ‘자연이 주는 위로’를 표현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녀는 자연과 음식, 그리고 감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기억의 구조’를 새롭게 그려내는 이야기꾼이다. 아이들은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언어보다 감각에 먼저 반응한다. 백유연은 그 감각의 흐름을 따르며, 한 장면, 한 색, 한 행위 속에 감정을 녹여낸다. 그 덕분에 그녀의 그림책은 일상적이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목련 꽃잎 한 장 속에 스며든 감정은 독자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며,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러한 점에서 백유연의 작품은 힐링 그림책이라는 단순한 범주를 넘어선다. 그녀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감정을 읽고, 말 없는 위로를 전하며, 독자와의 감정적 교감을 시도하는 작가다. 지금 이 시대,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느끼는 법을 알려주는 그림책이 필요하다면, 백유연의 세계는 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되어준다. 감정을 식물처럼 키우고, 음식을 나누듯 관계를 회복하는 그녀의 서사는, 그림책이 가지는 치유적 가능성을 새롭게 확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