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

세계 그림책 작가들의 실패작에서 배우는 창작법

blog0510-1 2025. 4. 22. 08:46

실패도 서사의 일부: 존 버닝햄의 《허버트의 외출》에서 배우는 감정 전이의 과잉

존 버닝햄은 《지각대장 존》과 《헨리의 자유여행》 등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작가이지만, 그의 덜 알려진 작품 《허버트의 외출(Humbert’s Outing)》은 비평적으로 아쉬움을 남긴 예로 종종 언급된다. 이 작품은 기존 버닝햄 특유의 유머와 풍자 대신 무거운 사회적 메시지와 어두운 감정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이야기의 감정선이 지나치게 강조되며 어린이 독자층과의 정서적 간극이 벌어졌고, 주인공에 대한 공감 형성이 어려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사례는 ‘감정의 밀도’가 곧 독자와의 연결 고리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패는 버닝햄이 자신의 강점을 역설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그는 상상과 현실의 균형을 더욱 정교하게 조율하게 된다. 창작자는 작품의 실패를 통해 ‘얼마만큼의 감정이 적절한가’라는 문제를 재점검하게 되며, 이는 모든 이야기 구성에 있어 핵심적인 작법 포인트가 된다. 실패는 방향 전환의 신호이며, 감정 과잉이 아닌 감정 조율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귀중한 수업이 된다.

세계 그림책 작가들의 실패작에서 배우는 창작법

너무 복잡하거나 , 너무 단순하거나: 에리크 칼의 《로라의 별》과 정보 과잉의 함정

《배고픈 애벌레》로 전 세계 아이들의 시각 발달과 감성 교육에 기여한 에리크 칼(Eric Carle)은 단순 명료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공동 작업한 《로라의 별(Laura's Star)》의 초기 그림책 버전은 독자와의 정서적 거리감으로 인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복잡하고 감정선이 다층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유아 대상 독서층에게 혼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림의 구성이 에리크 칼 특유의 콜라주 기법보다는 지나치게 묘사 중심으로 흘러,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보다는 메시지 해석에 집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유아용 그림책이 단순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되, 독자의 발달 단계에 맞춘 서사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통해 칼은 자신만의 시각 언어가 어느 지점에서 가장 효과적인지를 체득했으며, 이후의 작품에서는 감각적 언어와 이야기의 무게 사이를 정교하게 조율하는 방식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처럼 실패는 작가가 ‘무엇을 빼야 하는지’를 배우는 창작의 도구가 된다.

 

환상성과 스토리라인의 괴리: 숀 탠의 《삶의 규칙》에서 얻는 균형의 교훈

숀 탠(Shuan Tan)은 《도착》과 《잃어버린 것》을 통해 이민자의 정체성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해 온 작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초기작 《삶의 규칙(The Rules of Summer)》은 그림의 독창성에 비해 이야기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은 초현실적 이미지들과 추상적인 메시지를 나열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나, 개별 장면들이 내러티브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독자의 몰입을 저해했다. 환상성이 강한 그림책일수록 그 배경에는 뚜렷한 이야기 흐름이 필요하며, 상징의 나열만으로는 독자가 감정 이입하기 어렵다. 이 실패는 탠이 후속작에서 시각적 요소와 내러티브를 더욱 정교하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이미지가 스토리보다 강할 때 독자는 길을 잃는다’는 사실을 체감했고, 이후 그림과 서사의 상호작용을 핵심 작법으로 삼는다. 창작자는 이 사례를 통해 ‘상징의 설계는 구체적 경험의 번역일 때 더 강력하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

 

실패한 유머: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는 말썽쟁이》가 던지는 실험의 함정

앤서니 브라운은 상징과 유머를 결합한 철학적 그림책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 《우리 아빠는 말썽쟁이(My Dad’s Trouble)》는 일반적인 반응보다 낮은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장난꾸러기 아빠’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유쾌한 일상을 그리려 했지만, 과장된 유머가 정서적 공감을 방해하고 아동이 따라 하기엔 위험할 수 있는 행동 묘사로 인해 논란이 되었다. 브라운은 그간 ‘아빠’라는 존재를 이상화된 이미지에서 탈피시켜 왔지만, 이 작품에선 경계 없는 자유로움이 오히려 메시지의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작가에게 이 작품은 유머와 서사의 균형, 행동과 가치 전달의 미묘한 차이를 체감하게 한 사례다. 이처럼 실패한 유머는 창작자에게 ‘웃음의 층위’를 재구성할 기회를 제공하며, 독자의 현실성과 상상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준다. 유머는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며, 그 도구는 언제나 맥락에 따라 달라져야 함을 시사한다.

 

실패는 새로운 창작의 토양이 된다: 창작자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그림책 작가들의 실패는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창작법을 재정립하는 전환점이 된다. 이들 사례를 종합해 보면, 실패는 과잉 혹은 결핍에서 비롯된 균형 상실일 때가 많다. 감정의 과잉, 서사의 미흡함, 상징의 남용, 유머의 과도함은 모두 ‘표현의 의도’와 ‘독자의 수용’ 사이에 균열이 생길 때 발생한다. 그러나 이 균열은 창작자에게 자신의 문법을 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기회가 되며, 더 정교하고 입체적인 이야기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또한 실패는 창작자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게 하는 촉진제로 기능한다. 그림책이라는 장르는 어린이 독자라는 특수성과 시각적 요소, 텍스트의 간결함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예술이다. 그러므로 실패는 곧, 조합의 문제이자 구조의 실험이다. 세계적인 작가들조차 실패를 통해 성장했다는 사실은 모든 창작자에게 강력한 위안이자 용기를 준다. 창작의 길에서 실패는 결코 종착지가 아니라, 창의의 방향을 다시 가리키는 이정표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