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한 권의 배경에는 매일 쌓아 올린 작가의 삶이 있다
그림책은 짧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이미지들은 오랜 사유와 습관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창작은 단순한 ‘영감의 순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되는 일상, 고요한 생각의 시간, 스스로와의 대화가 쌓이며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특히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은 감정의 진실성과 상상력의 설득력이 요구되기에, 작가의 내면 루틴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본 글은 세계의 대표 그림책 작가들이 실제로 실천하는 창작 습관을 열 가지로 정리하여, 예비 작가나 교육자들에게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루틴들은 단순한 ‘작업 요령’이 아니라, 창의성과 꾸준함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삶의 리듬이며, 그림책이라는 예술 형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와도 같다.
1. 새벽 시간에 집중하는 '골든 타임' 설정
여러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아이들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조용한 새벽이 최고의 작업 시간”이라는 것이다. 새벽은 잡념이 덜하고, 일상에 끌려가지 않기 때문에 상상력의 흐름이 자유롭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나 숀 탠 역시 인터뷰에서 해뜨기 전, 조용한 시간대를 창작의 ‘핵심 루틴’으로 꼽는다. 이러한 시간 설정은 작가의 몰입도를 높이고 꾸준한 리듬을 만들어준다.
2. 손으로 스케치하며 떠올리는 아이디어 정리법
디지털 툴이 넘치는 시대지만 많은 그림책 작가는 여전히 손 스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백희나 작가도 초기 아이디어는 늘 종이에 그리며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손의 움직임은 뇌의 직관적 사고를 자극하고, 의외의 상상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습관은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 덩어리를 구체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3.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리는 ‘회상 시간’
존 버닝햄과 모리스 센닥은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과 순간을 되새기며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밝혔다. 하루에 10~15분씩 자신의 유년기 감정을 회상하며 자유롭게 메모하는 시간을 갖는 루틴은 감정의 진실성을 되찾고, 독자와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유리하다.
4. 꾸준한 독서로 감각 유지
거의 모든 작가들은 타인의 작품을 탐독하는 시간을 필수적으로 포함한다. 이는 그림책뿐 아니라 시, 소설, 민화, 신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감각을 유지하고 자극받기 위함이다. 줄리아 도널드슨은 리듬 구조를 위해 영국 민요와 시를 매일 읽는다고 했으며, 레오 리오니는 전통 회화를 분석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5. 산책하며 떠오르는 스토리 시드(seed)
산책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많은 작가들은 ‘걸으며 떠오른 생각이 책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숀 탠은 인적 드문 공원 산책 중에 느끼는 외로움에서 이민자 이야기를 구상했고, 백유연 작가는 자연의 색감과 식물 움직임을 관찰하는 산책 중 '목련만두'의 배경을 떠올렸다고 한다. 걷기는 상상력을 무의식과 연결해 주는 루틴이다.
6. 가상 독자(어린이)를 그리며 쓰기
앤서니 브라운은 창작 중 “이 장면을 아이들이 어떻게 느낄까?”라는 질문을 반복한다고 한다. 작품이 자기표현에 그치지 않고, 독자와의 상호작용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상상의 독자를 떠올리는 루틴이 효과적이다. 이는 줄거리의 흐름을 명확히 하고, 감정 전달의 강도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7. 자기 전에 메모하기
이억배 작가나 권정생 선생처럼 ‘하루를 마무리하며 아이디어를 적는 습관’을 가진 이들이 많다. 자기 전의 뇌는 하루의 감정을 정리하면서 창의적 사고를 활발히 진행한다. 이때 떠오른 생각은 꿈과 상상 사이의 경계에서 나온 진귀한 아이디어일 수 있다. 그날의 감정을 짧게라도 기록하는 것은 다음 날의 창작에 깊이를 더한다.
8. 반복 읽기와 수정의 리추얼
백희나 작가는 한 장면을 수십 번 넘게 다듬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 장면의 시각적 흐름을 체크하며 수정하는 루틴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 과정이다. 반복 읽기를 통해 감정의 과잉이나 누락을 발견하고, 텍스트와 이미지의 조화를 다시 점검할 수 있다.
9. 공간 정리와 루틴의 연결
공간 정돈도 중요한 창작 루틴이다. 김영진 작가는 “작업 공간이 어지러우면 머리도 어지럽다”고 했다. 공간의 구조와 분위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생각의 흐름을 끊기지 않게 하고, 작업에 대한 집중력을 높인다. 깨끗한 책상, 좋아하는 조명, 배경음악 설정 등도 루틴의 일부가 될 수 있다.
10. 실패를 기록하며 성장하기
그림책 한 권을 내기 위해 수십 개의 아이디어가 버려진다. 작가들은 이 실패를 ‘낙서장’이나 ‘아이디어 노트’에 기록하는 습관을 가진다. 이는 창작이 완성된 작품보다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실패를 통해 자신만의 흐름과 감각을 되짚는 이 루틴은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한 자기 대화의 장이 된다.
그림책 작가들이 직접 밝힌 창작 아이디어 발상법 7가지
1. 아이와의 대화에서 영감 얻기
예: 존 버닝햄, 백희나
아이들이 던지는 의외의 질문이나 순수한 논리를 듣고 캐릭터나 이야기의 씨앗을 얻는다고 해요. 평범한 일상 속 대화를 녹음하거나 메모로 남기는 것이 중요한 습관입니다.
2. 꿈 기록하기
예: 숀 탠
잠결에 본 장면이나 구조는 무의식의 보고입니다. 아침에 바로 떠오른 이미지를 스케치북에 남기고, 언젠가 이야기를 붙여보는 방식으로 작업하곤 해요.
3. 일상 오브제를 의인화해서 생각하기
예: 데이비드 위즈너
반찬통, 낡은 장화, 오래된 시계 등을 ‘만약 살아 있다면?’이라는 질문으로 의인화해 보고, 거기서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미술 작업이 아니라 ‘사물놀이’처럼 시작되는 경우도 많아요.
4. 아무 설명 없는 낙서 스케치 쌓기
예: 레오 리오니, 에리크 칼
아무 생각 없이 그린 형체에서 동물, 감정, 상황이 튀어나오는 걸 발견해요. 이들은 ‘내가 낸 것이 아니라, 나도 그걸 보는 사람이다’는 태도로 이야기 씨앗을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5. 산책하면서 말 없는 관찰
예: 모리스 센닥, 타르야 마키넨
동네 공원이나 카페에서 사람들의 작은 행동을 조용히 관찰하며, 거기서 관계와 감정을 상상합니다. 특히 표정, 손짓, 머뭇거림에 주목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6. 유년시절 사진 정리 및 회상 시간 확보
예: 앤서니 브라운
작가들 중 상당수가 어린 시절 앨범이나 당시 썼던 노트를 다시 펼치며 감정을 소환합니다. ‘왜 내가 이 장면을 좋아했을까?’라는 질문이 스토리의 감정 축이 되기도 하죠.
7. 책상 앞이 아니라, 책상 옆 '빈 벽' 만들기
예: 줄리아 도널드슨
작업실에는 낱말, 이미지, 낙서, 아이디어 메모를 무작위로 붙여두는 벽을 둬요. 아이디어는 항상 논리적으로 발전하지 않기 때문에 ‘혼돈의 벽’을 통해 연결을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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