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 작가, 이와이 도시오의 창의적 철학
이와이 도시오(岩井俊雄)는 일본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자 그림책 작가로, 디지털 기술과 아동의 상상력을 접목시키는 창의 교육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원래 영상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중, 자신의 아이를 위해 만든 종이책 실험에서 『100층짜리 집(100かいだてのいえ)』이 탄생했다. 이 시리즈는 세로로 긴 판형에 걸맞은 독창적인 공간 구조를 통해 아이들의 시각적 인지를 자극하고,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수학적 사고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와이 도시오는 단순한 이야기 전달보다는, 아동이 ‘직접 찾아보며 탐색하는 시각 경험’을 중시한다. 이는 읽는 행위와 놀이, 관찰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주는 형태로 구현되어, 현대 유아교육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능동적 참여 학습(active learning)을 반영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100층짜리 집』은 그 자체로 상호작용적 조형물이며, 아이들의 인지 발달 구조에 정교하게 맞춰진 수학적 탐색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수직 공간 구조와 수 세기의 결합: 기초 수학 개념의 자연스러운 내면화
『100층짜리 집』 시리즈는 각 페이지마다 한 층을 구성하여, 독자가 책을 위에서 아래로 넘기며 1부터 100까지 수직 방향으로 수를 세게 만든다. 이 구조는 아이에게 수를 단순히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 속에서 ‘위→아래’라는 방향 개념과 함께 수량을 누적적으로 인지하게 돕는다. 이는 피아제가 설명한 구체적 조작기 이전의 전조작기 유아가 직접 조작과 감각을 통해 추상적 개념을 형성하는 방식에 정확히 부합한다. 각 층은 구체적인 생명체의 삶의 장면(예: 생쥐의 거실, 거미의 주방 등)으로 구성되며, 이는 단조로운 수 세기를 이야기와 의미 있는 시각 자료로 보강한다. 수직 방향의 층수 개념은 아동이 수의 증가를 연속적·계량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환경이 되며, 특히 공간 인지력과 수량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유아 수학 교육의 효과적 매체로 기능한다. 이처럼 『100층짜리 집』은 ‘수 세기’라는 기초 수학 개념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도록 돕는 입체적 설계를 갖추고 있다.
공간 구성의 반복성과 패턴 인식: 유아기 수학 추론 능력의 발달 자극
이와이 도시오의 작품은 10층마다 등장하는 공간 테마의 반복성을 활용해 아동이 패턴과 규칙성을 인식하게 돕는다. 예를 들어, 『지하 100층짜리 집』에서는 1~10층에는 개미, 11~20층에는 달팽이, 21~30층에는 박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동물의 생활 방식과 행동 특성이 층마다 다르게 변주된다. 이러한 규칙성은 아이가 무의식 중에 수의 집단화와 반복 구조를 감지하게 만들며, ‘10’이라는 기준 단위에 대한 감각을 강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브루너는 아동이 수학 개념을 습득할 때 감각적 조작을 통한 ‘구조적 패턴’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00층짜리 집』은 단순한 나열 이상의 구조적 조직감을 아이에게 전달하며, 초기 수학 추론 능력과 논리적 사고의 기초를 길러주는 시각적 교육 도구로 기능한다. 특히 10개 단위로 정리된 층 구조는 십진법 개념의 기초적 인식으로도 연결될 수 있어, 초기 수학교육에서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간지각 능력과 시각적 스캐닝: 인지 발달 이론과의 연계
그림책을 위에서 아래로 넘기며 관찰해야 하는 이 독특한 서사는, 아동에게 공간지각 능력(spatial perception)을 요구한다. 특히 각각의 층을 세로 방향으로 관찰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보(예: 방의 구조, 등장인물의 위치)를 읽어야 하므로, 아이는 자연스럽게 시각적 스캐닝과 방향성 개념을 동시에 익히게 된다. 이는 유아기 뇌 발달에서 중요한 시각적 공간 처리 능력(spatial visualization)을 자극하는 요소다. 인지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공간지능이 언어지능 못지않게 중요하며, 유아기에 시각-공간적 자극이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100층짜리 집』은 이를 자연스럽게 반영하며, 층마다 구조와 배치가 다름에도 일정한 논리로 이어져 있어, 아동의 탐색 활동과 정보 정돈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처럼 이 책은 수학 개념뿐 아니라, 인지 발달에 중요한 공간적 정보처리 능력까지 아우르는 융합형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수직성이라는 물리적 상상력: 상하 개념 형성과 구조적 추론
책의 판형 자체가 세로로 긴 형태를 띠고 있어, 읽는 방식 역시 ‘위→아래’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변주를 넘어서, 유아에게 상하 개념과 구조적 사고력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지하편에서는 아래로 파고드는 형태로 층이 연결되어 있어, ‘위→아래’와는 반대되는 방향 인식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수직 방향 개념은 일상 속에서 잘 체감하기 어려운 수직 구조와 공간 이동의 개념을 아이의 감각 속에 자리 잡게 한다. 공간 속에서 수학을 경험하게 만드는 이 구조는, 최근 교육과정에서 강조되는 STEM 융합교육(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아동은 단순히 ‘높아진다’ ‘깊어진다’는 물리적 개념을 넘어서, 수의 흐름, 층의 위치, 구조의 순환성 등을 시각화하며 구조적 사고력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이는 공학적 상상력의 기초이자, 추후 수학적 문제 해결력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인지 과정이다.
탐색 중심의 독서 활동: 아동의 자기 주도적 수학 놀이
이와이 도시오의 그림책은 이야기 중심이라기보다는 ‘탐색 중심’의 독서 경험을 설계한다. 이는 아동이 수동적으로 내용을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층을 세고, 패턴을 찾고, 누가 어떤 층에 사는지 관찰하며 적극적으로 책과 상호작용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몬테소리 교육에서 말하는 ‘자발적 탐구 기반의 자기 주도 학습’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아이가 층마다 등장하는 생물의 이름이나 특징을 기억하며 다음 구조를 유추하려는 모습은, 예측과 추론을 동반한 논리적 사고 훈련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부모나 교사와 함께 책을 읽을 때 “몇 층에 뭐가 있었지?”, “10층마다 무슨 동물이 바뀌지?” 같은 질문을 통해 문해력과 수학적 사고를 동시에 자극하는 통합적 독서 활동이 가능해진다. 『100층짜리 집』은 이처럼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서, 아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패턴을 발견하며, 수 개념을 놀이처럼 받아들이는 몰입적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그림책을 통한 수학적 정서 함양과 융합교육의 가능성
『100층짜리 집』 시리즈는 단순한 숫자 교육용 책이 아니다. 이야기와 이미지, 패턴, 공간이라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수학 개념과 더불어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과 탐색의 즐거움까지 함께 자극한다. 특히 수를 세며 책을 끝까지 읽어냈을 때의 성취감, 다음 층을 유추하고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은 수학 학습의 긍정 정서를 강화시킨다. 이는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유아기부터 길러주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나아가 이 책은 공간지각, 수 세기, 규칙 인식, 탐색 놀이 등 다양한 인지 영역을 종합적으로 자극하며, 문해력-수리력-공간력의 융합형 학습도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100층짜리 집』은 수학을 놀이로, 이야기를 공간 탐험으로 전환시킨 명작이다. 이러한 그림책의 가능성은 단지 수학 교육을 넘어서, 감각과 이성과 정서가 만나는 융합 교육의 이상적인 예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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