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로 삶을 말하는 작가, 나카야 미와의 그림책 세계
나카야 미와(なかや みわ)는 부드러운 색감과 동그란 형태로 대표되는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일본 유아 그림책의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귀엽고 따뜻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유아기 아동의 사회화, 감정 인식, 역할 수용 등 교육적 요소를 섬세하게 녹여낸다는 점에서 교육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대표작인 『도토리 마을 시리즈(どんぐりむらの〜)』는 빵집, 책방, 소방서 등 다양한 직업과 공간을 배경으로 도토리 캐릭터들이 살아가는 마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시리즈는 직업의 세계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감정의 흐름, 해결 과정을 통해 유아의 정서 발달과 감정 조절 능력 함양에 기여한다. 나카야 미와는 사회적 주제를 감각적으로 담아내며, 아동이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시각 언어를 정교하게 활용하는 작가이다. 이처럼 그녀의 그림책은 단순한 이야기의 나열을 넘어서, 심리 교육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도토리 마을의 갈등 구조: 유아 정서 발달의 핵심 토양
『도토리 마을 시리즈』의 핵심 구조는 ‘사소한 갈등’과 ‘자연스러운 회복’에 있다. 예컨대, 『도토리 마을의 빵집』에서는 주인공 도토리가 빵 만들기에 서툴러 실수를 반복하며 좌절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의 무능함에 대한 부끄러움, 동료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노력 후의 성취감을 차례로 경험한다. 이러한 감정의 흐름은 단순한 서사의 장치가 아니라, 유아기 아동이 겪는 실제 심리 상황을 은유적으로 반영한다.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이 말한 유아기의 핵심 과업 중 하나인 ‘자율성 대 수치심’ 단계에서 아이는 자신이 시도한 행동이 실패했을 때 감정적으로 흔들리며 자존감을 시험받는다. 이 시리즈는 그러한 감정의 파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유아 독자에게 실패와 실망이 당연한 성장 과정임을 자연스럽게 주입한다. 감정은 숨기거나 억제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흐름 속에서 조절할 수 있는 존재임을 그림책은 조용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서적 공감의 확장: 반복적 서사와 감정 모델링의 역할
이 시리즈는 특정 도토리 캐릭터가 실패하거나 실망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감정 모델링(emotional modeling)을 유도한다. 감정 모델링이란 아동이 타인의 감정 표현을 관찰하고 이를 자신의 감정 표현 방식에 내면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도토리 마을의 도서관』에서는 한 도토리가 책을 빌리는 규칙을 어기고 실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통해 아이들은 타인의 실수를 보며 ‘실수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반면, 도토리가 스스로 실수를 정리하고 다시 규칙을 지키는 모습은 아동에게 자기 통제력을 심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 모델을 제공한다. 이는 알버트 반두라의 사회학습이론에 기반한 교육적 접근으로, 아동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통해 행동을 학습하게 된다. 그림책의 반복적 구성이 정서적 안정감을 형성하고, 감정의 원인-결과-회복 과정을 내면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어 이전의 감정 표현: 색채와 표정의 심리적 설계
나카야 미와의 그림책에서 돋보이는 또 다른 특성은 언어를 배우기 전 단계의 아동도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시각적 상징 시스템이다. 도토리 캐릭터들은 모두 비슷한 형태지만 눈, 입, 자세 등의 미세한 변화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실수한 도토리는 눈을 약간 작게 그리고 입꼬리를 내리는 식으로 시각적 정서를 전달한다. 또한, 배경색과 조명의 채도 변화는 감정의 흐름을 뒷받침하며, 밝은 색은 안정과 즐거움을, 어두운 색은 긴장이나 좌절을 암시한다. 이는 조기 아동기의 시각적 인지 발달과 정서 해석 능력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유아는 언어보다 시각 자극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이러한 섬세한 시각 구성은 아동이 자신의 감정을 식별하고 해석하는 데 효과적인 통로가 된다. 이는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에서 말하는 '정서적 반응을 안정시켜 주는 외부 자극'의 기능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감정 조절 전략의 내면화: 이야기의 마무리 구조가 주는 메시지
『도토리 마을 시리즈』는 대부분 이야기의 마지막을 ‘회복’과 ‘소속감 회복’이라는 긍정적 전환으로 마무리짓는다. 이는 유아가 감정을 마주했을 때 단순히 겁내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자기 효능감을 형성하게 돕는다. 특히 도토리들이 서로 격려하고, 실패한 친구를 다시 끌어안는 장면은 사회적 지지를 경험하게 하는 핵심 장면이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이 강조한 ‘성장 마인드셋’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이 시리즈는 실패를 고통이 아닌 성장의 일부로 재정의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유아기 감정 조절 능력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그림책이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길러준다. 이러한 서사적 전환은 단순히 교훈적 차원을 넘어, 심리 발달적으로 설계된 고도의 내러티브 전략이다.
도토리 마을의 교육학적 가치와 가정에서의 활용 가능성
『도토리 마을 시리즈』는 학교나 유치원 등 공식 교육기관뿐 아니라, 가정 내 정서 교육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아이가 실수하거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 때, 관련된 도토리 이야기를 함께 읽고 감정을 언어화해보는 활동은 매우 유익하다. 또한, 부모가 책의 상황을 거울처럼 활용해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해 주는 과정은 애착 안정성과 자존감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 이러한 그림책은 단순한 ‘읽기 활동’을 넘어서, 아이와 감정을 나누고 소통하는 정서 교육의 매개체가 된다. 교육학자 브루너가 강조했듯, 이야기를 통한 의미 구성은 아동의 인지·정서 발달을 동시에 자극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나카야 미와의 『도토리 마을 시리즈』는 그 점에서 유아기 감정 교육의 핵심 자료가 될 수 있으며, 그림책의 진정한 교육적 가능성을 체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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